2003년 03월 15일
기적의 순간 (1) 머나먼 바나 딜 (상)
「파이널 판타지 XI」 탄생 이야기
가정용 게임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 "게임은 이렇게 가능성이 가득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린 이 소프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시대의 파도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99년 10월. 스퀘어에, 아니 게임업계 자체에 전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려 하고 있었다.
당시 스퀘어의 업무집행임원 다나카 히로미치는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크로노 크로스]의 개발을 막 끝낸 상태였다. 일반적인 작품 제작의 경우, 하나의 타이틀을 끝내고 일단락을 거친 뒤에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편성한다. [크로노 크로스]를 막 완성한 다나카의 머리 속에는 이 단계에선 다음 작품의 형태는 막연하게 밖에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업무집행임원인 이시이 코이치도 또한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성검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의 개발을 막 끝낸 상태였다. 다음 작품으로 [성검]의 속편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다른 걸 만들 것인가. 결정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99년 가을은 그런 시즌이었다.
만약 시대의 파도가 반년만 더 늦었으면 두 사람은 별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가정용 게임 소프트의 변혁기도 크게 뒤로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99년 11월. 대작을 막 완성한 두 사람과, 같은 시기에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베이그란트 스토리]를 완성시킨 마츠노 야스미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였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로서 스퀘어의 초석을 쌓은 희대의 크리에이터이자 당시 스퀘어 부사장이었던 사카구치는 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을 해 보지 않겠나」
기적의 순간 (1) 머나먼 바나 딜 (상)
「파이널 판타지 XI」 탄생 이야기
가정용 게임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 "게임은 이렇게 가능성이 가득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린 이 소프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시대의 파도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인 99년 10월. 스퀘어에, 아니 게임업계 자체에 전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려 하고 있었다.
당시 스퀘어의 업무집행임원 다나카 히로미치는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크로노 크로스]의 개발을 막 끝낸 상태였다. 일반적인 작품 제작의 경우, 하나의 타이틀을 끝내고 일단락을 거친 뒤에 새로운 프로젝트 팀을 편성한다. [크로노 크로스]를 막 완성한 다나카의 머리 속에는 이 단계에선 다음 작품의 형태는 막연하게 밖에는 떠올라 있지 않았다.
업무집행임원인 이시이 코이치도 또한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성검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의 개발을 막 끝낸 상태였다. 다음 작품으로 [성검]의 속편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다른 걸 만들 것인가. 결정되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99년 가을은 그런 시즌이었다.
만약 시대의 파도가 반년만 더 늦었으면 두 사람은 별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가정용 게임 소프트의 변혁기도 크게 뒤로 늦춰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99년 11월. 대작을 막 완성한 두 사람과, 같은 시기에 플레이스테이션용 RPG [베이그란트 스토리]를 완성시킨 마츠노 야스미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사카구치 히로노부였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로서 스퀘어의 초석을 쌓은 희대의 크리에이터이자 당시 스퀘어 부사장이었던 사카구치는 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온라인을 해 보지 않겠나」
less..당시 "가정용 게임기에 의한 온라인 게임"은 완전히 미개지였다. 분명 세가 등 일부 메이커는 적극적으로 온라인 사업에 나서고는 있었지만, PC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던 [울티마 온라인]이나 [에버 퀘스트]로 대표되는 다인수 참가형 (MMO) RPG의 경우는 전혀 손대지 못한 상태. 그러나 사카구치는 굳이 이 미개척의 땅에 발을 내딛고 싶다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역시 둘 다 회의적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나카는 그렇게 당시를 되돌아 본다. 그러나 게임 소프트의 매출에 폐색감을 느끼고 있었던 두 사람은 시장에 흐르기 시작한 안 좋은 무드를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 그래서 두 사람은 구 [성검전설] 개발팀, 구 [크로노 크로스] 개발팀의 스탭들과 함께 PC용 MMO RPG를 닥치는대로 플레이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플레이를 시작한지 1주일이 못되어 온라인 게임이 지닌 큰 가능성을 알아차린다.
「조금 플레이 해보고는 바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건 된다. 해보고 싶다!"라고 강하게 느꼈죠. 당시에도 스탭들은 MMO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전향적인 의견도 힘이 되었습니다」
이시이의 말에 다나카도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카구치의 부름으로부터 한달. 가정용 게임기 첫 MMO RPG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품이 없다!
새해가 밝자 스퀘어는 매스컴은 물론, 유저들도 초대한 큰 발표회를 개최한다. 이 "스퀘어 밀레니엄"이라 이름 붙인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사카구치의 입으로부터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의 존재가 밝혀졌다.
"완전한 온라인 RPG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며 모험을 즐기는 게임"이라는 사카구치의 설명에 행사장은 술렁거린다. 그리고 [FF XI]의 컨셉 영상으로, 복수의 플레이어가 같은 세계에 접속, 대화를 즐기며 모험을 즐기는 영상이 방영되자 행사장의 흥분은 정점에 달했다. 그만큼 이 때 방영된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영상은 물론 다나카, 이시이 팀이 신년 연휴를 반납하고 제작한 것이었다. 이 때의 영상에 대해 이시이는 「돌관 공사로 만든 날림 작품」이라며 웃지만, 지금 돌아가고 있는 [FF XI]이 이 때의 컨셉에 매우 가깝고, 어떤 부분에서는 능가하고 있는 것은 역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스퀘어 밀레니엄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FF XI]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그 프로젝트의 크기는 긴 스퀘어의 역사 속에서도 최대급이었다. 전출의 [성검전설] 개발팀, [크로노 크로스] 개발팀에 가세, 스퀘어 오사카로부터 [무사시전](98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용 소프트) 개발팀, [패러사이트 이브 II](98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용 소프트) 개발팀도 제작에 참가. 나아가 마츠노가 이끄는 [베이그란트] 팀이 플레이 온라인의 시스템 제작을 담당. 각각 대히트를 만들어 낸 5팀이 집결, [FF XI] 프로젝트는 스타트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스탭수는 150명을 돌파. 질, 수 모두 최강의 멤버가 모인 스타트가 되었다.
그러나 이 대가족을 당장 풀가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 이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 MMO RPG를 플레이 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하드 디스크"는 발표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MMO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리라이트가 가능한 미디어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죠. 여기서 진정한 "암중모색"이 시작된 겁니다」(다나카)
하드 디스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된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개발진은 서둘러 개발을 시작한다.
"우리들이 PC용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감동을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도 맛보게 하고 싶다. 그리고 마이너한 온라인 게임을 바깥 무대로 끌어내고 싶다-"
이런 생각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FF XI]을 개발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아직 소문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하드 디스크도 "반드시 나온다"고 믿을 수 있었다.
암중모색 상태 속에서도 [FF XI]의 개발은 진행되어 갔다. 다행히 하드 디스크는 외부기억장치라서 플레이스테이션 2의 CPU나 그래픽 보드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픽이나 세계관, 캐릭터, 이벤트의 설정 등이 부분별로 다듬고 또 다듬어져 갔다.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시행착오의 연속. 최종적으로 소프트의 윤곽이 잡히는 것은 하드 디스크가 와서 실제로 그걸 이용해 돌릴 수 있게 되고 나서이다. 그 때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은 조금씩 상상으로 메꾸며 만들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완성된 마을을 통째로 폐기한 적도 있었다.
「일단 무조건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나가는 작업이었다」고 다나카는 당시를 돌아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개발 스탭들에게 플레이스테이션 2용 하드 디스크의 사양서가 도착하는 2001년 봄까지 계속되게 된다. 개발 스타트로부터 1년 반이나 되는 기간은 문자 그대로 "암중모색의 기간"이 되었던 것이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별을 향해 달리자! 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그 별은 가까이에 있나!? 하고 의심하면서 말이죠」(이시이)
통신 환경에 대한 불안
문제는 이것만은 아니었다. 하드 디스크 운운 이전에, 소프트가 발매될 몇 년 뒤에 일본의 온라인 환경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전혀 짐작이 안 갔던 것이다.
「2000년 초 무렵에는 설마 몇 년 뒤에 브로드 밴드가 이 정도로 보급될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죠. 통신 요금의 경우도 몇 년 뒤에는 정액 요금이 주류가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었던 겁니다」(다나카)
그러나 2000년 봄 무렵부터 일본 전체에 "IT"라는 말이 범람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브로드 밴드"라는 단어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는 다룰 수 있는 데이터 량이 적은 아날로그 회선이 절대적인 주류. 다나카, 이시이 두 사람도 「브로드 밴드가 주류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 [FF XI]은 아날로그, 브로드 밴드 양쪽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개발이 진행되게 되었다. 분명 브로드 밴드에 특화해 버리면 개발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전원이 브로드 밴드가 되면 그걸 총괄하는 서버의 규모를 크게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유지비 등에 터무니없이 돈이 들게 된다. 그리고 든 만큼의 돈은 최종적으로 유저들이 지불하는 월 이용료로 돌아 간다. 그건 어떻게 해서든 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 아날로그 회선의 통신량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브로드 밴드에서는 전혀 문제 없는 정보량도 아날로그 회선의 경우는 믿기 힘들 정도로 통신에 부담을 준다. 이 때문에 원래는 담고 싶었던 요소도 잇따라 삭제되게 되었다.
「2001년 7월에 발매된 [FF X]에 [FF XI]의 특전영상을 집어 넣었습니다만, 거기 들어있는 스크린샷 중에 실제로 사용한 건 제로 (웃음). 전부 다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FF X]의 발매 무렵까지는 정말 실험 기간. 이 실험을 통해 전망이 보일 무렵부터 개발에 박차가 걸렸지만요」(다나카)
실험이 매듭지어 지자 드디어 게임의 형태도 갖춰지게 된다. 그래픽이나 이벤트, 세계관도 날로 구체적인 형태를 띄어 갔다.
그러나 결정되지 않은 부품이 있었다. RPG를 플레이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로,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완성도를 좌우할 지도 모르는 것. 그건 "배틀 씬"이다.
온라인 RPG 상에서의 배틀 씬은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가. 그리고 개발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은 실제 온라인 상에서 봤을 때 제대로 기능하는가. 개발진 사이에서 생각지 못한 "배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하, 하편에 계속>
「파이널 판타지 XI」 탄생 이야기
가정용 게임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 "게임은 이렇게 가능성이 가득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린 이 소프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타협은 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라는 단순한 말이 [파이널 판타지 XI]의 제작진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온라인 게임 특유의 타임 랙이나 통신 속도, 통신량 등을 상정한 실험에 이은 실험. 어쨌든 제작 스타트부터 2년간은 그저 "연구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스탭간의 격렬한 의논은 일상 다반사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더욱 격렬한 토론이 오갔던 것은 "배틀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배틀 시스템은 RPG의 핵심이 되는 것. 통상의 RPG를 만들 때에도 시스템 결정에는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진다. 이번에는 거기에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강력한 족쇄가 붙어 있었다.
최대의 문제점은 온라인 게임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타임 랙"이었다. 실제로 PC용 MMO RPG에서도 캐릭터가 적을 공격하는 모션을 취한 몇 초 뒤에 그 대미지가 표시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개발 스탭들은 타임 랙을 시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 모션과 동시에 대미지도 표시된다-. 그 관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이끌어 온 크리에이터로서의 긍지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이 [파이널 판타지]라는 사실이 타협을 허락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적과 동떨어진 곳을 공격하거나, 모션과 대미지 표시가 동기화되지 않는 등의 MMO RPG에 있기 쉬운 현상도 [FF] 팬들은 용서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FF]가 아니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철저히 의논했습니다」(이시이)
또, 이와 같은 무게로 논의된 것이 "조작감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모션과 대미지를 동기화시키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발을 종래의 [FF]의 배틀처럼 멈추고, 상대가 있는 곳에 자동으로 공격하러 갔다 오는 방식이 최적. 하지만 이것은 배틀 씬으로 전환되지 않는 필드 상에서의 리얼 타임 배틀에서는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것이다.
「[FF XI]에서는 필드상에서 배틀에 항상 여러 사람이 참가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일일이 배틀 씬으로 전환되어서는 그걸 실현할 수 없죠. 결국 배틀 시스템은 3, 4번은 재검토 했습니다」(다나카)
여러 각도에서의 접근을 반복한 결과 완성된 것이 현재의 배틀 씬이다. 플레이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멋진 배틀 씬에 새삼 놀랄 것이다.
패치는 1기가!?
2001년 7월.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 2용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PlayStation BB Unit)가 정식 발표된다. MMO RPG를 만들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 등장함으로써 [FF XI]의 개발은 가속되어 나갔다.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만들어 온 캐릭터, 필드, 이벤트 같은 세세한 부분이 하드 디스크의 등장으로 차차 이어져 갔다. 하드 디스크의 발표로부터 β 테스트가 시작되는 2001년 12월 17일까지의 반년간은 그때까지의 착실한 작업이 열매를 맺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FF XI]의 β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테스트 기간은 3개월.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테스트로, 여러 가지 과제나 요망을 유저들로부터 흡수할 수 있었다. 반응은 대단했다. 가정용 게임기 업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순간이었다.
이 β 테스트와 시기를 같이해, 다나카, 이시이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 "월 이용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가정용 게임기에서의 MMO RPG는 [FF XI]이 최초가 되는 셈이었기 때문에 참고로 할 숫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의지할 데 없는 논의가 1년 이상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막연히 10달러(당시 약 1400엔)라는 수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확실한 수치냐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었죠 (웃음)」(이시이)
최종적으로 정해진 월 1280엔이라는 요금은 PC용 MMO RPG의 월 이용료 등을 참고로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PC용의 그것이 1500엔 이상인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설정이다.
「월 이용료 외에 패키지 요금, 그리고 무엇보다 PlayStation BB Unit을 살 돈을 유저들에게 요구해야 하죠. 결코 싸지 않은 돈이 드는 셈입니다. 그걸 고려하면 다른 3D MMO보다 높게 할 순 없었습니다」(다나카)
2002년 2월에 β 테스트는 무사히 종료되었다. 큰 문제도 없고, 유저들의 귀중한 의견이 착실히 모인 보람 있는 β 테스트였다. 실은 β 테스트가 종료되기 몇 일 전에 1기가 바이트의 패치(추가 데이터)를 제공, 5월에 스타트할 제품판과 같은 [FF XI]를 몇일 동안만 플레이하게 할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기가 바이트라는 터무니없는 양의 패치가 되면 내로우 밴드로 플레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만약 실행했더라면 기네스북급의 큰 패치였다」며 이시이는 웃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계획도 β 테스트가 큰 문제 없이 끝난 여유에서 나온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게임
2002년 5월 16일. [파이널 판타지 XI]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다나카 히로미치, 이시이 코이치, 그리고 사카구치 히로노부 세 사람이 온라인 게임에의 도전을 결심한 날로부터 이미 2년 반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2년 반이라는 제작 기간은 스퀘어 작품 중에도 대단히 긴 기간이다. [성검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나 [크로노 크로스] 같은 작품도 제작에 1년 반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스퀘어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운용이 시작되는 그 때, 제작이 시작된 이래 최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너무나 대단한 인기 때문에 입회 희망자가 쇄도, 입회를 위한 시스템만이 펑크나 버린 것이었다. 즉 작은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쇄도, 아무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스퀘어는 입회 접수를 3일간 스톱하고 복구에 전력을 다한다. 그 사이 게임 서버는 문제 없이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광대한 바나 딜의 대지에는 누구 한사람 없었다.
「실은 맨 처음에 들어올 사람들을 바나 딜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죠 (쓴 웃음). 씁쓸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플레이해 주었으면 싶어서 열심히 만들어 왔으니까요」(다나카)
이 문제가 해결되어 무사히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뒤에도 여러 가지 트러블이 이어진다. 아무리 대규모 β 테스트였다고는 해도 동시 참가자수는 2만명 정도. 그러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자 그 10배의 유저들이 바나 딜에 뛰어든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은 다나카, 이시이도 상정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는 PC에서도 전례가 없는 동시 접속수여서, 솔직히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도 많았던 것이다. 트러블은 어쨌든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매주 일어났다. 점검이나 버전 업을 포함하면 1주일 이상 연속해서 가동한 것은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 7개월 이상이나 경과한 2002년 연말이 처음이었다. 현재 드디어 시스템이 안정되어 큰 트러블 없이 가동되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인 만큼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꾸준하고 지루한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하지만 다나카, 이시이를 비롯한 [FF XI] 프로젝트 팀은 이미 각오하고 있다. 운영은 힘들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오는 유저들의 환희의 말이 [FF XI] 프로젝트 팀을 분발하게 하는 것이다.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TV 앞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화면을 가리키며 게임을 했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PC 게임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2이길 잘했다고 확신했습니다」(이시이)
그리고 이시이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저랑 다나카, 사카구치씨 셋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는 [드래곤 퀘스트] 뒤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FF]가 가장 먼저 MMO의 재미를 일본 팬들에게 전하는 존재가 되자고」
이시이의 말에 크게 끄덕이면서, 다나카도 이런 말을 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완전한 온라인 전용이 아니라, 스탠드 얼론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사양으로 하는 편이 나았겠죠. 하지만 저도 이시이도 그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온라인 전용인 편이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두사람은 비즈니스는 능숙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이쪽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었다. 그게 [FF XI]입니다」
온라인 RPG는 끝이 없는 게임이다. 앞으로도 진화를 계속해, 유저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 줄 것이다. 3년 전에는 뜬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였던 가정용 게임기에 의한 MMO RPG. [FF XI]이 그 문을 활짝 엶으로써, 일본 게임업계는 확실하게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갔다. 꾸준함과 착실함에 의해 만들어진 보물 같은 이 게임은 일본 게임사에 선명하게 그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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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fxizone.net 에서 퍼왔습니다.
요즘 파판하거든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역시 둘 다 회의적이었습니다. 온라인 게임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나카는 그렇게 당시를 되돌아 본다. 그러나 게임 소프트의 매출에 폐색감을 느끼고 있었던 두 사람은 시장에 흐르기 시작한 안 좋은 무드를 타파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 그래서 두 사람은 구 [성검전설] 개발팀, 구 [크로노 크로스] 개발팀의 스탭들과 함께 PC용 MMO RPG를 닥치는대로 플레이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플레이를 시작한지 1주일이 못되어 온라인 게임이 지닌 큰 가능성을 알아차린다.
「조금 플레이 해보고는 바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건 된다. 해보고 싶다!"라고 강하게 느꼈죠. 당시에도 스탭들은 MMO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전향적인 의견도 힘이 되었습니다」
이시이의 말에 다나카도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사카구치의 부름으로부터 한달. 가정용 게임기 첫 MMO RPG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품이 없다!
새해가 밝자 스퀘어는 매스컴은 물론, 유저들도 초대한 큰 발표회를 개최한다. 이 "스퀘어 밀레니엄"이라 이름 붙인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사카구치의 입으로부터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의 존재가 밝혀졌다.
"완전한 온라인 RPG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접속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취하며 모험을 즐기는 게임"이라는 사카구치의 설명에 행사장은 술렁거린다. 그리고 [FF XI]의 컨셉 영상으로, 복수의 플레이어가 같은 세계에 접속, 대화를 즐기며 모험을 즐기는 영상이 방영되자 행사장의 흥분은 정점에 달했다. 그만큼 이 때 방영된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영상은 물론 다나카, 이시이 팀이 신년 연휴를 반납하고 제작한 것이었다. 이 때의 영상에 대해 이시이는 「돌관 공사로 만든 날림 작품」이라며 웃지만, 지금 돌아가고 있는 [FF XI]이 이 때의 컨셉에 매우 가깝고, 어떤 부분에서는 능가하고 있는 것은 역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진정한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스퀘어 밀레니엄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FF XI]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그 프로젝트의 크기는 긴 스퀘어의 역사 속에서도 최대급이었다. 전출의 [성검전설] 개발팀, [크로노 크로스] 개발팀에 가세, 스퀘어 오사카로부터 [무사시전](98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용 소프트) 개발팀, [패러사이트 이브 II](98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용 소프트) 개발팀도 제작에 참가. 나아가 마츠노가 이끄는 [베이그란트] 팀이 플레이 온라인의 시스템 제작을 담당. 각각 대히트를 만들어 낸 5팀이 집결, [FF XI] 프로젝트는 스타트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스탭수는 150명을 돌파. 질, 수 모두 최강의 멤버가 모인 스타트가 되었다.
그러나 이 대가족을 당장 풀가동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원래 이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2에서 MMO RPG를 플레이 하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하드 디스크"는 발표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MMO를 플레이 하기 위해서는 리라이트가 가능한 미디어가 반드시 필요한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죠. 여기서 진정한 "암중모색"이 시작된 겁니다」(다나카)
하드 디스크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된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개발진은 서둘러 개발을 시작한다.
"우리들이 PC용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감동을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도 맛보게 하고 싶다. 그리고 마이너한 온라인 게임을 바깥 무대로 끌어내고 싶다-"
이런 생각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FF XI]을 개발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아직 소문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하드 디스크도 "반드시 나온다"고 믿을 수 있었다.
암중모색 상태 속에서도 [FF XI]의 개발은 진행되어 갔다. 다행히 하드 디스크는 외부기억장치라서 플레이스테이션 2의 CPU나 그래픽 보드의 성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픽이나 세계관, 캐릭터, 이벤트의 설정 등이 부분별로 다듬고 또 다듬어져 갔다.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시행착오의 연속. 최종적으로 소프트의 윤곽이 잡히는 것은 하드 디스크가 와서 실제로 그걸 이용해 돌릴 수 있게 되고 나서이다. 그 때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은 조금씩 상상으로 메꾸며 만들어 나가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완성된 마을을 통째로 폐기한 적도 있었다.
「일단 무조건 작은 돌을 쌓아 올려 나가는 작업이었다」고 다나카는 당시를 돌아보며 쓴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이 작업은 개발 스탭들에게 플레이스테이션 2용 하드 디스크의 사양서가 도착하는 2001년 봄까지 계속되게 된다. 개발 스타트로부터 1년 반이나 되는 기간은 문자 그대로 "암중모색의 기간"이 되었던 것이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단 하나의 별을 향해 달리자! 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그 별은 가까이에 있나!? 하고 의심하면서 말이죠」(이시이)
통신 환경에 대한 불안
문제는 이것만은 아니었다. 하드 디스크 운운 이전에, 소프트가 발매될 몇 년 뒤에 일본의 온라인 환경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전혀 짐작이 안 갔던 것이다.
「2000년 초 무렵에는 설마 몇 년 뒤에 브로드 밴드가 이 정도로 보급될 거라곤 상상할 수 없었죠. 통신 요금의 경우도 몇 년 뒤에는 정액 요금이 주류가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은 하면서도 아무래도 확신할 수 없었던 겁니다」(다나카)
그러나 2000년 봄 무렵부터 일본 전체에 "IT"라는 말이 범람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브로드 밴드"라는 단어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당시는 다룰 수 있는 데이터 량이 적은 아날로그 회선이 절대적인 주류. 다나카, 이시이 두 사람도 「브로드 밴드가 주류가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 [FF XI]은 아날로그, 브로드 밴드 양쪽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개발이 진행되게 되었다. 분명 브로드 밴드에 특화해 버리면 개발 부담은 줄어든다. 그러나 전원이 브로드 밴드가 되면 그걸 총괄하는 서버의 규모를 크게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유지비 등에 터무니없이 돈이 들게 된다. 그리고 든 만큼의 돈은 최종적으로 유저들이 지불하는 월 이용료로 돌아 간다. 그건 어떻게 해서든 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 아날로그 회선의 통신량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브로드 밴드에서는 전혀 문제 없는 정보량도 아날로그 회선의 경우는 믿기 힘들 정도로 통신에 부담을 준다. 이 때문에 원래는 담고 싶었던 요소도 잇따라 삭제되게 되었다.
「2001년 7월에 발매된 [FF X]에 [FF XI]의 특전영상을 집어 넣었습니다만, 거기 들어있는 스크린샷 중에 실제로 사용한 건 제로 (웃음). 전부 다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FF X]의 발매 무렵까지는 정말 실험 기간. 이 실험을 통해 전망이 보일 무렵부터 개발에 박차가 걸렸지만요」(다나카)
실험이 매듭지어 지자 드디어 게임의 형태도 갖춰지게 된다. 그래픽이나 이벤트, 세계관도 날로 구체적인 형태를 띄어 갔다.
그러나 결정되지 않은 부품이 있었다. RPG를 플레이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로, 그것만으로도 게임의 완성도를 좌우할 지도 모르는 것. 그건 "배틀 씬"이다.
온라인 RPG 상에서의 배틀 씬은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한가. 그리고 개발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은 실제 온라인 상에서 봤을 때 제대로 기능하는가. 개발진 사이에서 생각지 못한 "배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하, 하편에 계속>
「파이널 판타지 XI」 탄생 이야기
가정용 게임기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MMO RPG [파이널 판타지 XI]. "게임은 이렇게 가능성이 가득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린 이 소프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타협은 하지 않는다!
"시행착오"라는 단순한 말이 [파이널 판타지 XI]의 제작진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온라인 게임 특유의 타임 랙이나 통신 속도, 통신량 등을 상정한 실험에 이은 실험. 어쨌든 제작 스타트부터 2년간은 그저 "연구의 나날"이었던 것이다.
스탭간의 격렬한 의논은 일상 다반사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더욱 격렬한 토론이 오갔던 것은 "배틀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배틀 시스템은 RPG의 핵심이 되는 것. 통상의 RPG를 만들 때에도 시스템 결정에는 세심한 주의가 기울여진다. 이번에는 거기에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강력한 족쇄가 붙어 있었다.
최대의 문제점은 온라인 게임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타임 랙"이었다. 실제로 PC용 MMO RPG에서도 캐릭터가 적을 공격하는 모션을 취한 몇 초 뒤에 그 대미지가 표시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개발 스탭들은 타임 랙을 시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삼았다. 모션과 동시에 대미지도 표시된다-. 그 관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이끌어 온 크리에이터로서의 긍지가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이 [파이널 판타지]라는 사실이 타협을 허락하지 않았다.
「캐릭터가 적과 동떨어진 곳을 공격하거나, 모션과 대미지 표시가 동기화되지 않는 등의 MMO RPG에 있기 쉬운 현상도 [FF] 팬들은 용서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FF]가 아니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철저히 의논했습니다」(이시이)
또, 이와 같은 무게로 논의된 것이 "조작감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었다. 모션과 대미지를 동기화시키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캐릭터의 발을 종래의 [FF]의 배틀처럼 멈추고, 상대가 있는 곳에 자동으로 공격하러 갔다 오는 방식이 최적. 하지만 이것은 배틀 씬으로 전환되지 않는 필드 상에서의 리얼 타임 배틀에서는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것이다.
「[FF XI]에서는 필드상에서 배틀에 항상 여러 사람이 참가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일일이 배틀 씬으로 전환되어서는 그걸 실현할 수 없죠. 결국 배틀 시스템은 3, 4번은 재검토 했습니다」(다나카)
여러 각도에서의 접근을 반복한 결과 완성된 것이 현재의 배틀 씬이다. 플레이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멋진 배틀 씬에 새삼 놀랄 것이다.
패치는 1기가!?
2001년 7월. 드디어 플레이스테이션 2용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PlayStation BB Unit)가 정식 발표된다. MMO RPG를 만들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 등장함으로써 [FF XI]의 개발은 가속되어 나갔다.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 만들어 온 캐릭터, 필드, 이벤트 같은 세세한 부분이 하드 디스크의 등장으로 차차 이어져 갔다. 하드 디스크의 발표로부터 β 테스트가 시작되는 2001년 12월 17일까지의 반년간은 그때까지의 착실한 작업이 열매를 맺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FF XI]의 β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테스트 기간은 3개월.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테스트로, 여러 가지 과제나 요망을 유저들로부터 흡수할 수 있었다. 반응은 대단했다. 가정용 게임기 업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린 순간이었다.
이 β 테스트와 시기를 같이해, 다나카, 이시이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것이 "월 이용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였다. 가정용 게임기에서의 MMO RPG는 [FF XI]이 최초가 되는 셈이었기 때문에 참고로 할 숫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의지할 데 없는 논의가 1년 이상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막연히 10달러(당시 약 1400엔)라는 수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확실한 수치냐는 걸 아무도 알 수 없었죠 (웃음)」(이시이)
최종적으로 정해진 월 1280엔이라는 요금은 PC용 MMO RPG의 월 이용료 등을 참고로 이끌어 내었다. 그러나 PC용의 그것이 1500엔 이상인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하면 매우 낮은 설정이다.
「월 이용료 외에 패키지 요금, 그리고 무엇보다 PlayStation BB Unit을 살 돈을 유저들에게 요구해야 하죠. 결코 싸지 않은 돈이 드는 셈입니다. 그걸 고려하면 다른 3D MMO보다 높게 할 순 없었습니다」(다나카)
2002년 2월에 β 테스트는 무사히 종료되었다. 큰 문제도 없고, 유저들의 귀중한 의견이 착실히 모인 보람 있는 β 테스트였다. 실은 β 테스트가 종료되기 몇 일 전에 1기가 바이트의 패치(추가 데이터)를 제공, 5월에 스타트할 제품판과 같은 [FF XI]를 몇일 동안만 플레이하게 할 계획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기가 바이트라는 터무니없는 양의 패치가 되면 내로우 밴드로 플레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만약 실행했더라면 기네스북급의 큰 패치였다」며 이시이는 웃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계획도 β 테스트가 큰 문제 없이 끝난 여유에서 나온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는 게임
2002년 5월 16일. [파이널 판타지 XI]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다나카 히로미치, 이시이 코이치, 그리고 사카구치 히로노부 세 사람이 온라인 게임에의 도전을 결심한 날로부터 이미 2년 반의 세월이 흘러 있었다. 2년 반이라는 제작 기간은 스퀘어 작품 중에도 대단히 긴 기간이다. [성검전설 레전드 오브 마나]나 [크로노 크로스] 같은 작품도 제작에 1년 반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틀림없이 스퀘어 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운용이 시작되는 그 때, 제작이 시작된 이래 최대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너무나 대단한 인기 때문에 입회 희망자가 쇄도, 입회를 위한 시스템만이 펑크나 버린 것이었다. 즉 작은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쇄도, 아무도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스퀘어는 입회 접수를 3일간 스톱하고 복구에 전력을 다한다. 그 사이 게임 서버는 문제 없이 가동되고 있었기 때문에, 광대한 바나 딜의 대지에는 누구 한사람 없었다.
「실은 맨 처음에 들어올 사람들을 바나 딜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죠 (쓴 웃음). 씁쓸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플레이해 주었으면 싶어서 열심히 만들어 왔으니까요」(다나카)
이 문제가 해결되어 무사히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뒤에도 여러 가지 트러블이 이어진다. 아무리 대규모 β 테스트였다고는 해도 동시 참가자수는 2만명 정도. 그러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자 그 10배의 유저들이 바나 딜에 뛰어든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은 다나카, 이시이도 상정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일본 국내에서는 PC에서도 전례가 없는 동시 접속수여서, 솔직히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도 많았던 것이다. 트러블은 어쨌든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매주 일어났다. 점검이나 버전 업을 포함하면 1주일 이상 연속해서 가동한 것은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나서 7개월 이상이나 경과한 2002년 연말이 처음이었다. 현재 드디어 시스템이 안정되어 큰 트러블 없이 가동되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인 만큼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꾸준하고 지루한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하지만 다나카, 이시이를 비롯한 [FF XI] 프로젝트 팀은 이미 각오하고 있다. 운영은 힘들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오는 유저들의 환희의 말이 [FF XI] 프로젝트 팀을 분발하게 하는 것이다.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TV 앞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모여 화면을 가리키며 게임을 했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PC 게임이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들었을 때 역시 플레이스테이션 2이길 잘했다고 확신했습니다」(이시이)
그리고 이시이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저랑 다나카, 사카구치씨 셋이서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는 [드래곤 퀘스트] 뒤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고, [FF]가 가장 먼저 MMO의 재미를 일본 팬들에게 전하는 존재가 되자고」
이시이의 말에 크게 끄덕이면서, 다나카도 이런 말을 했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완전한 온라인 전용이 아니라, 스탠드 얼론으로도 플레이할 수 있는 사양으로 하는 편이 나았겠죠. 하지만 저도 이시이도 그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웃음). 왜냐하면 온라인 전용인 편이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두사람은 비즈니스는 능숙하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이쪽이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었다. 그게 [FF XI]입니다」
온라인 RPG는 끝이 없는 게임이다. 앞으로도 진화를 계속해, 유저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 줄 것이다. 3년 전에는 뜬 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였던 가정용 게임기에 의한 MMO RPG. [FF XI]이 그 문을 활짝 엶으로써, 일본 게임업계는 확실하게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갔다. 꾸준함과 착실함에 의해 만들어진 보물 같은 이 게임은 일본 게임사에 선명하게 그 이름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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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파판하거든요..